2018 artist note - 나의 그림의 첫 시발점은 프리미티브(primitif)

즉 원시적 사고를 통하여 현대문명의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불확실성과 그 과정에서 생성되어지는 수많은 생물학적 부조리를 수만 년 전의 언어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 인간의 원초적 삶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행위나 의식들을 표현해 보고자 했다.

 

현대적이지도 않고 컨템프러리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형적 표현은 100여 년 전의 낡고 우둔한 신인상주의의 표현 같지만 이러한 의식의 표현은 몇 만전의 표현되어진 동굴벽화와 같은 원초적 표현성에 가깝다. 그러기에 시간이 몇 백 년이 흐른 미래에도 변함이 없는 표현들이 아닌가? 사료된다.

 

언어가 없었을 때의 인간의 사랑법 질투와 욕망을 표현했고 삶과 죽음이 다가오는 시시각각의 무의식의 표현들을 그려놓았던 동굴벽화, 나는 그때 즉 언어가 없었던 시대의 애환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때의 표현들을 지금의 시대에 표현하고 싶었다.

 

80ㆍ90년대 파리 시절에는 그렇게 본능의 감성하나로 작업을 하였다면 뉴욕으로 건너온 2000년대에는 그것을 선을 위주로 한 보다 더 깊은 감성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색은 인간의 눈을 통하여 가장 감성적으로 다가왔다면 선은 감성을 통하여 재해석으로 판단된 자신의 DNA와 경험으로 얻어진 무의식의 철학이 무르익어서 표현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탄생된 그림들이 블랙과 화이트위에 만들어진 표현들이다.

그런데 왜 수많은 색중에 블랙과 화이트를 선택했을까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우주의 만물의 근원은 어둠과 빛으로 되어있고 모든 만물을 섞으면 검게 되고 모든 걸 분해시키면 무채의 색으로 돌아가는 감은 결국 인간의 시야에서 가장 깊고 원초적인 색상은 흑과 백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인간은 두 가지 색중 어느 한 가지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것의 판단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화면을 동시에 작업을 해나기란 수많은 난관이 존재했다.

재료의 한계성 때문에 검은 화면에서 같은 방법론이 통하지 않고 화이트작업에도 블랙의 방법이 통하지 않았기에 블랙은 평면위에 돌출을 화이트는 심입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주처럼 넓고 예술적 깊음을 표현 하고 싶을 때 블랙을 밝고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정말 화이트는 나에게 위안의 표현이 될 정도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행위였다.

 

하지만 프리미티브 블랙 엔 화이트 여기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그것은 반복되는 작업에서 오는 매너리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을 어떻게 하면 이런 반복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숙제를 언제나 등에 지고 다녔다. 말로서 즉 언어로서 표현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토해 놓은 블랙과 화이트는 만족 할 만했지만 그것들에게서 오는 반복성은 견뎌내기가 힘이 들었다.

 

뭉크의 절규를 수십점 수백 장을 그린다고 하면 어찌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공예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몇 년이 흘렀을 때 일본을 방문했을 때 숙박을 호텔과 조금 다른 켑슐방 이라는 곳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엄마의 뱃속이라 할까 아니면 관속이라 할까? 아무튼 좁은 공간에 몸만 뉘일 정도의 크기에서 잠을 청했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은 그 속에 들어가니 새로운 우주 속으로 들어온 느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맑고 또렷한 생각들은 마구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그곳 일본의 켑슐호텔 속에서 내가 그리고 싶어 하던 공간과 사물의 해체와 빼기들의 화면이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한한 펼쳐지는 공간으로 이제는 과학적으로 정리된 원시적 물체들을 날려보거나 무중력 상태로 고요하게 흔들림 없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일전에 흑백의 반복성 작품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 화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진 그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탄생된 것이 바로 ~인피니티 ~시리즈 옐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넓은 공간 그려진 것도 없는 그 공간을 그리는데 한 달이 거의 걸렸다.

한 화면의 수많은 사물들을 그려 넣던 흑백의 그림보다 열배의 시간도 더 걸린 것이다.

 

작곡가가 심포니도 작곡하지만 아리아도 만들고 4중주 또 트리오도 작곡하듯이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사람의 원시적 사고방식 속에서 표출 할 수 있는 것들을 정하지 않고 작업하는 방식을 통하여 자유롭고 유희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땐 화이트 뭔가 작품과 깊음을 표현하고플 땐 블랙시리즈를 그리고 정제되고 마음의 향과 선 그리고 절제된 공간에서의 사물 인식하고 싶을 때는 인피니트 시리즈, 즉 한계를 정하지 않고 그림에 접근함으로서 소극과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커다란 기쁨으로 극복해 낼 수 있음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이즘 즉 프리미티브 원초적이면서도 본능적 사고에서 범주는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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