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일요일 아침

Artist Note

 

작가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상 중에 하나를 타인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끝까지 파 해치려고 하는 집념이 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닌 것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Primitif 즉 원시주의를 남 몰래 나의 그림에 투영 시키며 인정받기를 꿈꿔왔다.

그러면서도 현대문명의 달콤함을 몰래 탐닉하며 그림에서 말하려고 하는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순된 삶은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한계와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80년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파리와 뉴욕에서의 작가생활은 한국에서의 일상적인 길을 가고 있었던 다른 작가들의 비해 문화의 “hydrodipomania" 즉 목마른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하면서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사고에 근접 할 수 있었던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이 더 이상 갈릴레오 시대처럼 논쟁거리가 되지 않듯이 내가 추구 하려고 했던 원시주의 즉 Primitif의 표현에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구의 원시림 아마존과 아프리카는 현대문명의 잠식으로 점점 더 황폐해 가고 있으며 인간의 욕망으로 뿜어내는 열기는 지구를 점점 더 붉게 물들게 하고 나 역시 그 문명 속에 나 자신 역시도 하나의 작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존재하고 있기에 그 모순됨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 감정의 변화 그것이 문제였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성적 생각을 하면서 그 사고를 투영 할 수 있는 행동의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기에도 좋고 훌륭한 기교가 있으며 감칠맛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추구하는 정신적 An ism을 알리고 체계화 시키는데 는 높은 벽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표현 자체에서만 머무는 예술이 아닌 표현의 카테고리를 끊고 표현되어지는 표현만이 사람들을 An ism 분화구속으로 끌어들여 같이 분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지금은 인상파 시대가 아니다.

전깃불에 열광하고 전화나 라디오에 열광하던 시대가 아닌 수억 광년 밖에 있는 화성탐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조그만 모바일로 세계의 구석구석의 일들을 실시간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지금의 시대에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OIL PAINTING!

참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깨닫고 있다면 좀 더 진보적인 첨단 미디어나 폼 나는 설치물쯤은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 열광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석기 시대에 그려진 동굴의 벽화 앞에서 본능의 향기를 느끼는가?

2500년 전의 석가모니가 했던 말을 지금도 읽고 배우고 있는가?

 

인간은 물리적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메게 체이면서 그 생명력에게 주어진 한계 즉 시간이 주어짐에 따라 그 시간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언어 사용이 가능한 동물이다.

첨단의 현대 문명 속에서도 빙하의 기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음은 물론 주어진 시간 속에서의 삶에서 공허함을 순간순간 표현함으로서 얻어지는 희열을 우리는 예술이라 지칭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사람들이 깨달은 정신적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표현 즉 어떤 행위 일지라도 예술로서 승화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된 사실을 부정 할 수 없다.

특히 현대 미술은 그 영역이 이루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방대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생명력 있고 예술성을 부여 하는 것은 작업자와 구경꾼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 누구도 특정 예술을 하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PAINTING!

바보다.

언뜻 보면 좀 낡은 느낌이 먼저 들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시대적 정신을 먼저 표현함으로서 재료에서 오는 낙후됨을 뛰어 넘고 현실의 사실적 문제를 Primitif적 표현방식으로 나타냄으로서 다시 돌아보게는 방식의 XP Black & white Painting인 것이다.

화면에서 oil 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의 색은 완전 하나의 색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이 primitif의 정신에서 비롯됨, 섞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의 색감, 그리고 이지구상의 모든 색의 출발과 끝인 black 과 white 위에 분리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엄격한 단색과 선을 올려놓음으로서 이시대의 인간들이 정신적으로 탈출 얻고자하는 자유로움을 실시간 표현 , 본능감에서 얻어질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화면에서의 자유로움을 맘껏 유지시키는 또 하나의 심볼은 네 귀퉁이에 미니멀 적인 조형은

프리미티브한 소재들이 맘껏 놀 수 있게 지켜주는 문지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스러움과 엄격함은 어쩌면 극과 극일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분명 하나 됨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짊어지고 먼 길을 가고 있는

작가 자신이 거울에 비치는 본인의 행위를 항상 볼 수 있어야한다고 오늘 아침 생각한다.

나 자신의 문제점을 볼 수 없다면 그것으로서 작가의 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시대의 현대미술은 그 시작과 끝이 모호한 상태이다.

어떤 행위를 누가 어떻게 표현하고 문제를 제기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인간이 있기에 모든 예술이 필요하고 또 만들어져 우리를 기대나 관심의 초점으로 끌어들인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어떻게 한 작가의 작품을 가늠하고 판단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것만이 그의 예술성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쇄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아파트 앞 학교.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일요일 아침

2010.12.6

 

최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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