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에서 선묘로의 이행 -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화력(畵歷)이 30여 년에 이르는 최울가의 작품세계는 몇 차례의 변모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변모는 80년대 중반의 폭발할 듯 한, 화려하고 정념적인 색채에서 현재의 지적이며 기호적인 세계의 구축 사이에 존재한다. 그것은 20여 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부분만을 본다면 자칫 놓칠 수 있는 그런 변화들이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을 볼 수 없는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를 분석하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그의 작품 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최울가는 80년대 중반이후 자신만의 독자적인, 그리고 개성이 있는 세계를 구축해 오면서 이 분야의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최울가가 그린 일련의 작품들은 일종의 자전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나의 주변의 인물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부친>(24x33cm,  1986)), <동생>(41x32cm, 1986), <혈육>(41x32cm, 1986) 등등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비롯하여 <Mr. Lee의 연주>(54x72cm, 1986), <밤과 술>(38x45cm, 1986), <어떤 남자의 초상>(36.5x23.5cm, 1986) 등등 주변 인물을 그린 작품들에서는 슬픔과 연민을 바탕으로 한 진한 감정적 소회가 묻어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색과 난색의 대비와 거친 터치를 수반한 검은 윤곽선을 공통점으로 지니고 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침울한 편이다. 작가도 어느 글에서 쓴 것처럼 생활이 어려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작품세계의 특징인 경쾌하고 밝은 원색의 대비와 비교해 볼 때, 같은 대비라도 어두운 색조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관심을 끈다. 앞에서 스치듯이 언급한 것처럼 이 침정의 세계는 당시 인간에 대해 작가가 품었을 법한 연민의 감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최울가의 전작(全作)을 염두에 둘 때, 특히 이채를 띠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시기 그의 그림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진한 애정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동생>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절규, <Mr. Lee의 연주>에서 맡을 수 있는 악사의 고단한 삶, <밤과 술>에서 보이는 현실 도피의 감정 등등은 모두 인간에 대해 지니고 있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집에 수록된 최울가의 작품 연대로 미루어볼 때,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작품상의 큰 변화가 찾아온 것 같다. 예의 폭발할 듯한 화려한 원색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 변화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90년대 초 프랑스에서의 거주가 아니었겠는가 짐작한다. 우선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1988년 전시가 끝난 후에 심리적으로 큰 변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것은 어느 날 파리의 아뜰리에에서 겪었던 체험에 연유한다. 문명의 모태로서의 자연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예술적 성과들이 세계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미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이루어진 최울가의 예술적 편력은 사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끊임없는 방랑과 순례에 다름 아니다.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이어지는 그의 예술가적 삶의 편력은 미의 보편성을 얻기 위한 방랑자의 삶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90년대에 그린 최울가의 작품들에서는 지중해 문화권 특유의 경쾌함과 발랄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같은 원색이라도 우리의 오방색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미적 취향이요, 색가(色價)다. 마치 아동화를 연상시키는, 이 현란하면서도 폭발적인 느낌의 이미지들은 문명에 대한 강한 안티적 성격을 띠면서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흐르고 있는 자유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하고자 하는 예술의욕(Kunstwollen)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현대판 동굴벽화라고도 부를 수 있는 최울가의 작품은 한 문명인의 생활일기이면서 동시에 선사시대의 동굴로의 회귀를 희구하는 흐드러진 한판의 색의 축제다. 최울가의 작품이 지닌 이 강한 원시성은 마치 선사시대의 동굴벽화가 선사인들의 생활의 기록인 것처럼 오늘의 삶에 대한 작가 나름의 기록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울가가 검은 선을 사용한 드로잉에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몰두하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일상의 기록자 혹은 이미지의 채집자로서 최울가는 삶의 일상적 단편들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드로잉에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뉴욕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최울가의 작품에 또 한 차례의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이 천 년대에 들어서 나타난 변화가 그것이다. 그것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의 작품들의 특징이었던 화려한 원색과 독특한 질감이 있는 터치와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다. 그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색채에서 선묘(線描)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작업이 색에 선이 종속된 시기였다고 한다면, 이 천 년대의 작업은 반대로 색이 선에 종속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업이 낙서화(graffiti)를 연상시키는 것도 바로 그런 특성에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이 천 년대의 작품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흰색의 두드러진 사용이다. 이는 특히 캔버스가 두꺼운 상자 형태를 띠는 근래의 작업에 더욱 짙어진 경향이 있다. 이 천 년대 초반에 주력했던, 중성색에 의한 바탕색의 사용 즉, 흰색이 많이 가미된 회색, 고동색, 살색의 등장은 후반부의 흰색으로 가는 과도적 현상으로 보이며, 이러한 유채색들은 차후에 흰색의 캔버스에 역시 사각의 형태로 부분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주로 캔버스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 사각형의 색면들은 마치 실로 꿰맨 것처럼 표현돼 있는데, 어디선가 읽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는 마치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처럼 그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라고 한다.

 아동화를 연상시키는 최울가의 이 천 년대의 작품들은 후반에 올수록 기계의 설계도면이나 화학실험실을 연상시킨다. 복잡한 회로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호와 문자, 이미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마치 작가 혼자만이 아는 암호집과도 같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작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가는 어항, 고기, 시계, 헬리콥터, 식물, 숫자, 별, 동물, 사람, 건물, 방 등등이 특유의 직선과 함께 얼기설기 어우러진 화면만을 제시할 뿐 더 이상의 친절을 베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관람자가 그림을 보면서 사물의 의미에 접근하는데 필요한 사다리를 준비해 놓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관람자는 해도(海圖)도 없이 대해를 항해해야 하는 난파선의 선원과도 같은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작가와 관람자의 만남은 이 ‘상호작용(interactivity)’을 유도하는 상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최울가의 작품은 관객에게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건다. “여기에 사과가 있다.”가 아니라, “그것은 사과일수도 있고, 그냥 작은 원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을 사과로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람자의 몫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읽는 데에는 상상력과 함께 어느 정도의 끈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퍼즐을 맞추듯, 때로는 지도도 없는 석회 동굴을 탐사하듯, 조심스럽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그림을 즐기는 묘미가 있다. 그것은 작가의 체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감정이입의 관계이며, 관람자의 체험을 작가의 그것에 이입할 때 파생되는 감정공유의 관계다.

 최울가의 테마나 발상은 하나의 평면에 다차원적으로 표현된다. 거기에는 마치 사이버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셀(cell)처럼 시제가 서로 다른 차원들(과거, 현재, 미래)이 존재하며, 시간의 어긋남과 공간의 이동이 시계라든지 헬리콥터와 같은 매개물에 의해 상징화되어 있다. 따라서 최울가의 작품은 대표적인 아날로그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의미론적으로는 디지털 형식이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관람자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깊고도 넓은, 그리고 한없이 확장이 가능한 사이버 세계에서 만나 즐길 수 있는 그런 대상들이다. 그것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에 떠다니는 부표와도 같은 기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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