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이 시사하는 궁극적 미의식 - 이재언 미술평론가

최울가의 그림이 우리 화단에 소개된 지가 이제 불과 1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아직 우리 미술시장에서 그리 친숙하게 불리는 편이 아니다. 20여 년 동안의 오랜 국외 생활로 인해 우리 화단에 참여한 것이 좀 늦었으며, 작가의 화풍 역시 우리 정서와 그리 잘 밀착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이름조차도 거리감을 주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아명이 멀리 동구권이나 중앙아시아 출신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울가’라는 이름은 어려서 ‘울보’라는 의미로 부른 순 우리말이었다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거리감들이 최울가 그림에 대한 평가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워낙 독특하고 개성적인 양식들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작가가 프랑스에서 일본을 경유해 우리 화단에 면식을 드러낸 90년대 말만 하더라도 생소한 상황이었다. 마치 아이들 낙서 같은 분방한 필치와 선묘, 예측 불가능의 원시적 에너지, 무중력의 공간성, 꿈꾸는 듯한 몽상적 화면.......이같이 독특한 특징들의 화면은 낯설기는 하나, 화단에서의 독보적인 위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우리 화단에 진입하기 전까지의 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편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작업을 해오다 우연치 않게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활동이 자연스럽게 우리 화단으로 이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97년 어느 날 우연히 인사동에서 작가를 만났을 때, 그는 일본 오사카 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사카, 교토 순회전에서 그림이 매진되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바 있어 반가움은 더했고,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아사히 TV 초대로 가진 순회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에서의 전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러한 활약이 그리 쉽게, 그리고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사실 그의 그림이 상당히 감각적이고 문학적 센스를 갖추고 있기는 하나 우리 정서보다는 구미 쪽에서나 더 잘 어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었다. 그러한 선입견 때문에 본인도 국내 무대에는 관심을 별반 갖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연이은 전시들이 호평을 받게 되었다. 외국의 다양한 양식들에 예민한 일본이 우리 시장보다는 훨씬 더 우호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내 미술계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작가는 이후에도 일본에 더욱 많은 애호가층을 넓혀나갔으며, 이후 파리, 독일, 뉴욕 등에서의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자유롭고도 독특한 그림들이 우리 화단에 소개되었을 때부터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다양한 다원적 양식들이 명멸하는 격투기장과도 같은 화단이지만 막상 신선감을 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90년대 자체가 우리 미술로서는 집단적 개성의 이름 아래 지루한 대치를 종식시키고, 개성이라는 것에 눈을 뜬 시기로서 실험은 많았지만 정리를 필요로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 때 최울가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와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화면이 자유로운 표현과 회화의 진정한 힘을 느끼게 하였으며, 아울러 열정과 에너지가 충분히 신선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견 그의 화면들은 바스키아나 바젤리츠로 대표되는 뉴페인팅이나 트랜스아방가르드와도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낙서와도 같은 분방하고도 어눌한 형태들, 거칠고도 생동감 넘치는 색조, 어딘지 모르게 설명하기 힘든 어두운 그림자와 우수가 산재한 종말론적인 내용들이 그러한 맥락을 연상케 할만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그림은 어떤 몽환적이고 분열적인 정서에 몰두해 있는 부류와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그러한 병리적인 현대에 치료사적인 처방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치료적 관점이라는 틀에서 보자면 작가의 그림은 여전히 해체적이고 불안한 정서를 떨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카오적인 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류와 동반 매몰되기 쉬운 글쓰기의 속성에 대해 작가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품고 있는 듯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뉴페인팅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하려는 시도에 대해 상대적으로 갖는 특징과 속성을 언급하는 수준에서 합당해진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화면은 무의식적 욕구와 상상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자유로움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한 자유로움 속에서도 일정한 아이콘과 패턴들이 반복되는 구조를 보면 꾸밈없는 자폐적 향수와 유희충동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작가의 ‘무중력’이라는 회화적 컨셉트와 모토로 수렵된다. 중력을 운명처럼 체감하면서 사는 존재로서 우리는 무중력을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꿈꾼다. 필자의 경우도 얼마 전 모 방송국이 관여하여 예비 우주인을 선발하는 이벤트 때문에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하는 꿈을 꾸곤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무중력 상태에서 무중력을 느끼려함이 결코 아니다

중력 속에 무중력의 의식을 만들어 내자는 거다.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이 세상.

에너지도 필요치 않고

모든 것이 부패하지도 않는,,,,,,,,,,,,,,,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지금도 꾸고 있는 새벽녘의 짧은 꿈

그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끝없는 향유의 오르가즘처럼 .

이 세상에 무중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해“ (작가노트)

 

  작가가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무중력’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다의적 메타포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시간, 공간의 물리적 무한성과 초자연성, 처음과 나중의 혼재, 원죄나 운명과도 같은 생래적인 것들에 대한 존재론적 저항, 우리의 정신 속에 내재해 있는 기존의 질서나 가치 등에 대한 인식론적 회의와 비판 등을 지시하고 있는 메타포로서 말이다. 작가의 창조는 분명히 중력 상태의 전제, 즉 현실과 역사를 전제한 데서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중력이란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이다. 막연한 카오스 상태나 해체를 지시하는 것과는 차별을 이루는 핵심 개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시대적 트렌드로 속절없이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존재론적 무중력과 인식론적 무중력의 양상이 90년대만 하더라도 창조적 공간질서라는 차원으로 요약된다. 공간과 대상의 고리가 교란되고 상식적인 공간 위계가 전복되는 시각적 무중력이 탐구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서 아이의 옹알이와도 같은 비밀스런 형상들과 제스츄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읽어내는 해독의 묘미가 함께 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대체로 일상적 풍경의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들이 변형과 무중력적 구성에 의해 유머러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초현실적인 생경함과 실존주의적 진지함을 엿보게 한다. 중력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 화면은 최소한의 모델링이나 구성 등의 형식 요소마저 폐지시키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자주 등장하는 TV 소재의 작품의 경우, 브라운관을 통해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무작위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 프레임의 문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부유하고 있다. 또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역시 환각과 숙취에 시달리는 눈동자를 하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모습들이 공간의 창조적 재구성으로서의 무중력이며, 우리의 의식을 무중력의 환각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동시대의 풍경을 암각화로 새기듯 거칠고 강렬하게, 또한 생동감 넘치고 상상력이 번득이는 나름대로 탐탐한 화면의 형식을 구축하고 있음을 간과하지는 말자.  

 

  최근 들어 작가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무중력은 이제 형상 자체의 해체에 가까운 선묘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 하얀 바탕이나 어두운 바탕의 캔버스에 스크래치를 하여 낙서 같은 선묘나 기호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얀 도화지 위에 영아기나 유년기의 아이들이 그린 것 같은 색연필 선묘화를 연상시키는 화면이 바로 그것이다. 퇴행적 낙서 이미지 자체가 선사시대 암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프리미티브의 맥을 짚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이러한 조형적 추이가 패턴화 내지는 도식화되고 있는 느낌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무중력이라는 개념의 고리가 충실해지면서 회화적으로 모종의 환원적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같은 평면화의 진화가 이제 면이나 입체적 양감 따위는 모두 종적을 감추고 있는 무중력의 가속을 확인할 수 있다. 스크래치에 의한 선묘의 방법이 마치 선사시대 암각화를 재현하는 것 같은 것이라는 점에서는 시간적 무중력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사인이 바위에 자신들의 보편적 삶의 내용들을 자신들의 미의식에 따라 새겨나간 것처럼 작가는 캔버스에 자신의 일기들을 자신의 미의식이 사역하는 대로 보다는 새기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렸다기보다는 새긴 것이다.

  작가의 무중력 개념이 중력과의 상대성을 전제하고 있듯이, 작가의 화면에서 보여지는 무중력의 메타포는 의외로 충동적이기보다는 차분하고 치밀하며 논리적인 면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화면을 분석적으로 살펴보면 통제와 조절 장치에 의한 조율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변형과 재구성이 앞서 지적한대로 치밀하고도 탄탄한 구성력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색상면에서도 심미적인 코드를 암암리에 작동시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색면처리를 함에 있어서도 붓 하나만이 아니라 다양한 효과의 스크래치 등에 의해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동색계의 색이라도 적절히 조율된 심미적 배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채로운 색조의 산만한 분위기가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있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다양한 톤과 효과의 뉘앙스를 구사함으로써 중력의 전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는 해석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할들을 미루어 볼 때 테크닉과 감각, 자유로운 상상력과 개념적 전개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역량과 경험 안에서 비교적 무리 없이 조절되고 조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휑한 화면을 놓고 많은 비평적 코멘트가 있을 수 있다. 과거엔 작가가 계속 자신의 비밀스런 형상과 구성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이끌어갔다면, 오늘은 차라리 비움에 의해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작가가 몇 가닥의 선으로 느슨하게 직조한 만큼, 화면이라는 그물은 다양한 경험들의 왕래를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바로 그 느슨한 그물의 틈으로 우리 독자의 경험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자유로운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작가의 무중력이 가지는 가치의 궁극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음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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