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겨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들이 움츠러들었다.

얇고 가냘프게 선으로만 남고 싶었던 뉴욕의 그 겨울처럼 앙상하게 남은 선들은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그 자리에는 넓게만 번져가는 색, 면이 조금씩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그건 분명 역으로 되돌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파리의 강렬한 색, 면 뒤에 분명 선과 면이 뉴욕의 그 작업실에서 같이 공존해야한다, 하지만 선과 면이 같이 있어야 할 화면위에는 선만이 앙상하게 남아있었고 그때부터 나의 회화론이 산산이 무너져 내리고 작업적 방황이 시작되었다.

결국에는 단 하나의 간결한 선 작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2004년에는 본격적 화이트 play시리즈가 탄생됐지만 여전히 의문의 벽 앞에서 서성거려야만 했다.

2006년에 본격적으로 black series가 탄생 되었지만 간결한 선 작업에만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2008년 가을에는 그동안 그렸던 모든 그림들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태우게 된 동기는 물론 만족 할 수 없었던 선 작업의 허황되고 정신적 방황이 우선이겠지만 실질적인 도화선은 74가에 가고시안 갤러리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을 보면서 나는 어떤 작가이고 미래에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직접적인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시는 정말 예술가의 자유스러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회화에서 경거망동 할 수 있는 모든 짓거리를 다 분출 해 놓았기 때문이다.

누구한테 시켜서 그린 듯한 사실적 보석 그림과 컬러풀한 리듬채의 나비 작품 한쪽 벽면에는 여러 개의 구리판을 붙이고 큐빅 다이아몬드를 그 위에 줄지어 놓여 있는가 하면 사실적 해골 작품과 기름을 가득 채운 직사각형 어항에 소머리를 잘라서 놓았는가 하면 캔버스에 컬러 점들 약들을 넣어둔 약장이 한쪽을 차지하고 아무튼 그 외발에 걸러든 모든 오브제들을 던져놓듯 전시된 그 광경을 보면서 정말 자유스러움의 회화인가? 하는 회의가 물밀듯했다.

뉴욕의 어떤 한국인이 그렇게 자유스럽게 예술품을 설치 할 수 있는 작가가 누구인가? 데미안 허스트가 영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면?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지금 까지 그린 그림을 없애기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고야 말았다.

다시는 그들처럼 분별없는 자유스러움에 취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분별없는 허황된 모습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지금까지의 그림들을 한 점의 연기로 날려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뉴욕시절의 그 겨울날로 다시 돌아가 조밀하고 촘촘한 선과 면을 캔버스 위에 다시 주워 담고 있었다.

섞이지 않고 단 하나의 색, 면을 원하는 나의 DNA는 뉴욕에서 비워 두었던 그 자리에 빼곡히 채워 넣을 것이다. 인간들이 쓰다버린 미천한 기호들과 나둥그러진 문향위에 때로는 단색으로 때로는 정교한 물리적 이론같이 그렇게 현대와 미래가 원하는 컨템퍼러리와 만남을 늘 염두에 두고 인간의 감성적 얘기를 풀어 나갈 것이다.

언제가 다시 선의 간결함과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그날 다시 그를 만날 것이다.

아이디어가 아닌 본연의 감성으로 만들어지는 그런 선들이 필요로 하는 그때 나는 진정 나의 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흔히 만날 수도 없는 그런 아이들처럼의 선들을 표현하는 그날까지 지금의 선과 색, 면 그리고 기호들과 오브제들의 자유스러움을 아직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다.

201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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