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울가의 호모루덴스적 낙서일기” - 김종근 (미술평론가)

1.최울가의 대한 나의 첫 인상

1990년 중반 파리의 어는 화랑 오프닝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아주 억세고 어눌한 전형적인 부산 사투리에 불어를 섞어가며 경쾌한 웃음으로 그의 작품들을 프랑스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얼마 후 나는 다시 프랑스의 저명한 살롱전인 SAGA 전에서, 스트라스부르그의 아트페어에서 나는 그를 또 만났고 비로서 거기서 그의 많은 그림들을 보았다.

서로 서울과 파리에 엇갈리게 살았던 이유로 나와 그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는 얼마 후 나는 그의 뮈동에 있는 크고 넓은 아틀리에에 그림으로 꽉 채워저 있는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거기서 그가 비로서 한국보다는 프랑스나 일본에서 보다 잘 알려진 화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론 그 이전 프랑스 평론가로부터 최울가의 그림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들은바 있었고 그가 누구인가 한참 궁금해 있었던 참 이었다. 그 이후 내가 만난 최울가는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는 격정적인 그의 그림과는 다르게 퍽 인정미가 언듯 언듯 보이는 그런 작가였다.

 

 

2.거침이 없는 울가의 그림들

한참 후 그는 파리에서의 10여년의 생활을 정리하고 그는 보다 더 활기찬 예술의 도시 뉴욕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는 연락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지만 나의 뇌리에는 그 때 아트페어에서 본 그림들과 작업실에서 어질러진 그림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림이 이렇게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술전문가들보다는 오히려 애호가들이 그의 그림을 더 좋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위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1979년 첫 개인전을 부산 수로화랑에서 가진 것을 기억한다면 그는 화력 25년을 헤아리는 어엿한 중견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랑스로 건너갔고 거기서 배르사이유 미술대학에서 다시 정통적인 그의 예술세계를 점검하고 그는 작가의 길을 걸어갔다. 내가 본 그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어쩌면 그렇게 그의 성격처럼 거침없는 작품들이였다.

그의 그림은 마치 너무나도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어 혹시 천부적인 작가 태생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그의 그림들은 열정적이고 뜨거웠다.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들이 캔버스 위에서 아무런 혼돈이나 갈등도 없이 만나서 하나의 이미지로 탄생되는 그의 그림들은 피카소의 그림들을 떠올리게도 했다. 검은 선을 대담하게 쓸 때는 죠르쥬 루오 같기도 했고, 아버지와 아들의 숨김없는 표정과 거친 붓터치의 점묘 법적인 그림들은 쟝 뒤뷔페의 아르 부뤼(원시주의) 그림처럼 열정적이였다.

전반적으로 1990년을 전후한 그의 그림들은 표현주의 화풍과 코브라 그룹의 꼬르네이유 그림처럼 막힘도 없고 그 어떤 주저함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의 화풍은 격정적이였다. 색채의 쓰임에서도 혁신적인 구도의 파격적인 붓터치는 그가 얼마나 예술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 진정한 작가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는 어떠한 화풍에 묶이는 것도, 어떠한 주제에 묶이는 것도 그는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호소처럼 문명을 자연화 시키는 인간 본래의 감성을 회복시키는 언어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반문하고 되뇌었다. “어떠한 그림의 이론도 무시하고 싶다, 다만 그릴뿐이다.”

최울가는 그런 무형식의 그림 세계를 무법이 필법인 세계를 동경하고 꿈꿔왔다. 그래서 그에게는 우리가 중요하다는 원근법도, 색채의 대비도, 구성도 우리의 기대롸 예상을 언제나 뒤엎고 만다. 그리고 그의 화면에는 일상적인 생활의 도구들이 기물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어떤 형상들은 유치하고 치졸하리 만치 즉흥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감의 섞임이나 기법등 모두가 그의 그림 속에 살아 있다.

 

3.용원저수지에서 본 그의 백색 그림들

얼마전 충주 근처의 저수지 옆에서 나는 가장 최근의 그의 그림들을 보았다. 그 그림들은 온통 오일과 파스텔, 크레용 그리고 유화용 쵸크로 완성된 그림들이었다. 몇 개월 전 키아프에서 본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그림들이다.

이전에는 색 위에 있는 그림에서 이번 그림들은 색속에 그림들이 들어가 있는 작품들로 수십평의 아틀리에를 가득 메웠다. 마치 하얀 백색 위에 파낸 듯 그려진 그림들은 조선 백자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 흰색의 백자빛 색채 위에 새겨진 원숙한 풍경들은 그 시대의 풍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러나 나를 아니 우리를 더욱 끌어당기는 것은 숙명적인 느낌으로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마치 때가 되면 일어나 일터로 나가 논과 밭을 일구며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그런 모습이 그의 물감 투성이 청바지에서 묻어났다.

그는 하루에 6-7점도 하고, 어떨때는 하루종일 아틀리에를 서성이며 공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렇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예술은 도박이라고 했지만, 최울가에게 있어 예술은 유희 그 자체이다. 과연 인간을 특징 지워주는 고유한 속성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인간을 ‘사유하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러나 쟝 호이징가(Johan Huizinga:1872-1945)는 이 둘의 개념을 포괄하는 더 큰 걔념을 제시했다. 그것은 ‘놀이’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화에 있어서 놀이가 갖는 주요성을 간과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는 ‘놀이함’에서 나온다. 생존을 쫓아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은 여타의 다른 생물들과 다를게 없다고 한다. 여가를 갖고 놀이할 때, 비로소 인간 삶의 독특한 의미가 생겨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문화는 놀이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놀아지는’ 것이다. 호이징가는 이런 놀이의 형식적 측면을 놀이는 현실적인 다른 목표를 의도하지 않고 그 자체로 즐기기 위하여 행해지는 활동이며 놀이는 일상과 분억과 고백들을 화면 위에 풀어놓는 것이다. 그의 화면에 수시로 떠다니는 모습들 그것은 낚시하는 모습이며, 골프하는 모습들이다. 그는 그런 그림도 몽타주에도 시계 사람들이 있다. 모든 자연의 풍경과 사물들이 그의 하얀 그림 속에 들어 있다. 물끄러미 그의 그림을 본다. 가만 보니 뉴요의 지하철에서 다운타운의 허름한 벽면에서 본 그림과 같다. 사람들은 그것을 낙서 그림이라고 했다. 그만큼 최울가의 그림도 진실하고 정겹다.

 

 

4.어떤 유감솔직히 나는 그에게 혹은 꾸준히 그런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한없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그림으로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소홀해 왔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의 그림이 부끄럽다고 몇백점을 태우는 그런 참 촌스런 파리쟝. 뉴욕커인 작가 최울가 나는 언젠가 그의 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나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작업이 우리들 앞에 다시 평가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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